책소개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는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는 명실공히 우리화(於梨華)의 대표 소설로 꼽을 수 있는데, 2006년 ≪아주주간(亞洲周刊)≫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어 소설 100권’ 중 하나다. 이 소설은 타이완에서는 유학생 소설로 불리기도 하며 1960년 당시 타이완의 미국 유학 열풍과 이주를 통해 화인(華人) 디아스포라가 경험하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우리화의 소설은 1960년대부터 붐을 이룬 미국 유학을 일찍이 경험하고 잘 훈련된 문학적 역량으로 표현해 낸, 유학생 문학 분야를 선구적으로 일구어 낸 작품이다. 당시의 북미 지역으로 가는 유학 붐을 소재로 해 주인공 텐레이가 유학 이후 타이완으로 다시 돌아와서 겪게 되는 이중적 소외에 집중해 소설을 전개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텐레이가 미국에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힘들게 여학생 화장실 청소와 접시닦이 일을 하며 버텨 낸 과거를 타이완에 있는 그의 집에서 부리는 하녀가 알게 된다면 과연 자신을 ‘도련님’으로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부모와 그 주변의 공동체 때문에 모국어와 모국의 문화에서 완전히 떠날 수 없어서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온 텐레이는 돌아간 곳에서도 자신이 이방인임을 확인하게 된다. 생동적인 인물의 묘사와 자신의 미국 사회 경험을 자전적으로 풀어내어 소설에 반영했기에 그녀의 소설은 마치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많은 타이완과 중국 대륙의 유학생들에게 필독서처럼 읽혔다. 하지만 이 소설은 유학생 문학의 특징들만이 아니라 화인 디아스포라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화인 디아스포라 소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지닌다.
소설은 플래시백 기법을 통해 타이완과 미국을 오가고 있으며, 전체를 아우르는 서사 구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화가 주로 활동한 1950~1960년대 무렵을 통틀어 타이완 문학에서는 ‘뿌리 잃음(無根)’에서 ‘뿌리 찾기(尋根)’로의 경험과 방향성 설정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1953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간 우리화는 이주 후 경험한 미국의 삶을 작품에 용해시켜 타이완과 미국이라는 두 장소에서 주인공이 지식인으로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구성해 1967년에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 속 주인공의 미국 유학과 타이완으로의 일시 귀국, 그리고 심리 상태들은 마치 작가 우리화 자신의 유학 경력과 고국 귀환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으로 유학하기 전과 확연히 달라진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겹쳐서 표현해 내고 있다. 상상한 고향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고향을 확인하는 것은 화인 디아스포라가 겪게 되는 필연적인 하나의 결과이며 이로써 야기되는 정체성의 혼란은 화인 디아스포라들에게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탐색을 해야 하고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주변 인물과 현실에 개입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10년 남짓 유학 생활을 하고서 타이완으로 돌아오지만 오로지 박사 학위와 돈으로만 평가되던 미국의 삶이나 학문적인 성과를 떠나서 미국에서 유학했다는 사실과 학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대받는 타이완의 현실에서 주인공은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리고 여전히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는 그가 존재할 수 있는 현실 속 공간인 거주국과 출발지 양쪽에서 동시에 소외된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섬이고 섬에는 모래뿐이죠. 모래 한 알 한 알이 모두 외로움이에요.” 유학하던 10여 년 동안도 그는 섬이었고 타이완으로 돌아온 순간에도 그는 섬이다. 외로움이라는 모래로만 이루어진 섬은 풍랑에도 쉽게 흩어질 것이고 그것이 형체를 갖추어 섬으로 자리하고는 있지만 언제 산산이 부서져 사라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함 속에 항상 처해 있다. 주인공이 경험한 화인 디아스포라 신분의 불안감은 그가 미국에서 겪은 철저한 소외에 기인했다. 게다가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도 그는 미국 유학을 경험한 고향 사람들과는 다른 인간으로 분류되었다. 부모와 형제, 약혼자, 친구들을 만나 보아도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디아스포라가 된 화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미 그곳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고국과 고향의 모습은 그들만의 시간 속에 잠들어 있는 상상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화의 작품에서는 고국으로 귀환한 화인 디아스포라의 괴리감과 자신의 타자성 확인이라는 부분이 주된 정서로 나타난다. 이로써 경험하게 되는 이중적인 소외와 다시금 표류하게 되는 정체성을 통해 자신이 영원히 디아스포라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주인공은 이곳과 저곳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해 낸다. 이 외에도 유학생의 모습을 한 디아스포라의 지난한 삶과, 타자로서 철저히 배제된 신분으로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 고향에 왔지만 이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디아스포라의 소외된 모습은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200자평
타이완 작가 우리화의 대표 작품이자 그녀의 미국 유학 체험이 녹아 있는 자전적인 소설이다. 1960년 당시 타이완의 미국 유학 열풍과 이주를 통해 화인 디아스포라가 경험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타이완에서는 유학생 소설로 부르기도 했으며 1960년대 북미 지역 화인화문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2006년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어 소설 100권’ 중 한 편이기도 하다.
지은이
우리화는 저장성(浙江) 전하이(鎭海) 사람으로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항일 전쟁 시기 푸젠(福建), 후난(湖南), 쓰촨(四川) 등지로 옮겨 다녔고 1946년 저장성(浙江) 닝보(寧波)로 돌아갔다. 1947년 말 타이완으로 이주해 타이중 여중 시절부터 문학에 심취해 선총원(沈從文)의 ≪변성(邊城)≫에 대한 평론을 쓰기도 했다. 194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이완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역사학과로 전과했고 샤치안이 편집을 주관한 ≪문학잡지(文學雜誌)≫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53년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UCLA의 영문학과에 지원했으나 신문방송학과로 바꾸어 입학했다. 1956년 석사 학위를 받고 같은 해 영어로 단편소설 ≪양쯔강의 수심(揚子江頭幾多愁)≫을 발표해 ‘Samuel Goldwyn Creative Writing Award’에서 1위로 뽑혔다. 같은 해 결혼해 가정과 아이를 돌보면서 작품 활동을 했고, 1961년부터는 중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해 1962년 장편소설 ≪칭허로 돌아가길 꿈꾸다≫를 탈고하고 타이완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면서 1년을 머물렀다. ≪칭허로 돌아가길 꿈꾸다≫의 완성 직후 타이완의 부모를 만나러 가서 ≪황관(皇冠)≫ 잡지에 위 작품을 연재했고 텔레비전에 방송되어 마침내 1963년 출판되었다. 1963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프린스턴에서 시카고 북쪽 지역으로 이사했고 1965년에 뉴욕으로 이사했다. 1967년에 발표한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又見棕櫚又見棕櫚)≫는 그녀의 대표작이며 이 작품으로 ‘타이완자신문예상’ 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타이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주인공의 모습은 생생한 현장 리포트와도 같이 당시 이주민의 신분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 그대로 보여 준다. 1968년 뉴욕으로 옮겨 가서 올버니(Albany) 주립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중국 현대문학에 관한 수업도 맡았다. 그녀의 작품은 ≪돌아가기(歸)≫(1963), ≪칭허로 돌아가길 꿈꾸다≫(1963), ≪또다시 가을(也是秋天)≫(1964), ≪변화(變)≫(1965), ≪눈밭 위 별(雪地上的星星)≫(1966),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1967), ≪불꽃(焰)≫(1969), ≪백구집(白駒集)≫(1969)과 ≪눈물 머금은 백합(帶淚的百合)≫(1971), ≪회장현형기(會場現形記)≫(1972), ≪시험(考驗)≫(1974), ≪푸 집안의 자식들(傅家的兒女們)≫(1975), ≪사랑은 물과 같이(愛情像水一樣)≫, ≪상견관(相見歡)≫, ≪삼인행(三人行)≫(1979) 등이 있다.
옮긴이
고혜림은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 현대문학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 중국 문학 번역 작업 및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역자의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현대문학과 화인화문문학, 화인 디아스포라문학과 세계 문화, 세계문학과 화인화문문학 작가들의 정체성 문제다. 이 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학 쟁점, 문학과 영화의 관계, 이종 문화 간 충돌과 결합 등에 관한 문제로,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대표적인 글로는 학위 논문 ≪북미 화인화문문학에 나타난 디아스포라문학의 특징≫(2013)이 있다. 2013년 부산대학교 대학원 학술상을 수상했다. 기타 학술 논문으로 <장시궈(張系國)의 소설 ≪장기왕(棋王)≫과 ≪바나나수송선(香蕉船)≫에 나타난 화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2013), <북미 화인화문문학의 역사와 시기구분>(2012), <수용과 배제: 킹스턴의 ≪여인무사≫를 중심으로>(2009), <21세기 중국 문학연구의 전환과 고민: 바이셴융(白先勇)소설을 통해 본 문학에서 문화연구로>(2007)가 있다. 학술 번역으로는 예웨이롄(葉維廉)의 <타이완, 홍콩 모더니즘 시의 역사적 지위>, 량빙쥔(梁秉鈞)의 <1950년대 홍콩 영화를 통해 본 5·4전통의 계승과 변화의 홍콩 문화 읽기>등이 있다. 역서로는 부산대학교 김혜준 교수 외 4인이 공동 번역한 홍콩 여류 작가 단편소설 모음 ≪사람을 찾습니다≫(이젠, 2006)와 ≪장기왕≫(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등이 있다.
차례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후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꼭 모두 돌아오는 건 아니지! 게다가 각자 사정이 다르니까. 그 사람들은 이곳에 뿌리가 있지. 하지만 우리는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줄곧 내가 타이완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껴. 그냥 여기에 얹혀사는 것일 뿐,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 비록 우리가 그렇게 어릴 때 이곳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기에 뿌리가 없어.”
텐레이는 컵의 레모네이드를 다 마시고는 손안에서 컵을 돌리고 있었다. “네 생각에 미국에서 살면 그곳에 뿌리가 생길 것 같니?” 그렇게 말하고는 컵을 내려놓고 벗어 둔 긴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고 텐메이는 재떨이를 가지고 왔다. 그는 깊숙이 몇 모금 마셨다.
―<제9장> 중에서